한일용(본지 편집위원, 마포구의회 의원)

(특별기고)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삶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아슬아슬 하다. 사회가 불만과 불평과 불신으로 가득 차 걱정이 없는 날이 없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날이 없으며 어느 것 하나 결정하거나 결심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만큼 세상이 야박해져만 가는 것 같아 ‘행복해 지려는 꿈’마저 실종되는 느낌이다.

우리사회는 지금 모든 영역에서 질서를 상실한 채 이익잡단들이 대립 충돌하면서 총체적 난국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행복의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그냥 어떤 성격의 것이든 종류를 불문하고 가지려고만 덤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부작용과 불협화음을 조성하기도 한다. 하기야 삶이란 누구에게나 힘들다. 말로는 쉽게 행복하다, 기쁘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만큼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면 막막하다.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어떤 교회를 짓는데 세 사람의 석공(石工)이 와서 날마다 대리석의 조각을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느냐고 물은 즉, 세 사람의 답이 각각 달랐다.

첫째 사람은 험상궂은 얼굴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어조로 “죽지 못해서 이놈의 일을 하오”하고 대답을 했다. 둘째 사람은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말 한다 “돈 벌려고 이 일을 하오” 그는 첫째 사람처럼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불평을 갖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별로 보람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셋째 사람은 평화로운 표정으로 만족스러운 대답을 한다. “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대리석을 조각 하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목적과 목표가 뚜렷했다. 즉 그는 자기 하는 일에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 세 사람의 상직 적 의미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사람은 저마다 저다운 마음의 안경을 쓰고 인생을 바라보고 있다. 그 안경의 빛깔이 검고 흐린 사람이 있고, 맑고 깨끗한 사람도 있다. 검은 안경을 쓰고 인생을 바라보느냐, 푸른 안경을 쓰고 인생을 바라보느냐 는 그 사람 마음에 달린 것이다. 불평의 안경을 쓰고 인생을 바라보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모두 불평 투 성 이요, 감사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인생에서 축복하고 싶은 것이 한없이 많을 것이다. 행복의 근원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리분별의 정신력을 갖고 있는 이상 또 남과 더불어 살아 갈수 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인 이상, 누구든지 먹고 살기 위한 의식주와 처자와 친구와 명성과 사회적 지위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돈, 건강, 가정, 명성, 쾌락 등은 행복에 꼭 필요한 조건들이다. 이런 조건을 떠나서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곧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행복하다는 것과 행복의 조건을 갖는다는 것과는 엄연히 구별해야 할 별개의 문제다. 집을 지으려면 돈과 나무와 흙이 필요하지만 그런 것을 갖추었다고 곧 집이 되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 논리다.

행복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행복감을 떠나서 행복이 달리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성이 높고 좋은 가정을 갖고 재능이 뛰어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면서도 불행한 사람, 또 그와 반대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별로 갖지 못하면서도 사실상 행복한 사람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주 본다. 전자의 불행은 어디서 유래하며 후자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사랑의 대상 찾아야 내가 사랑할 대상이 없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나의 존재와 생활은 무가치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모두다 신의의 토대 위해서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믿기에 같이 잘 살 수 있고, 같이 일할 수 있고, 같이 친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랑과 믿음, 그리고 행복은 하나의 소중한 가치임과 동시에 삶의 기초다. 여기에 행복의 탑을 쌓고 즐거운 생활의 요람을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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